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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10824 mardi 본문
어마어마한 피로를 무릅쓰고(무릎 아님 주의) 이러닝 교육을 듣다가 채용 사이트로 갔다.
처음은 옛 애인의 직장이었다. 아쉽게도 이 달 중순에 채용이 있었고 마감되었다. 그곳에 가려면 반년이나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의 이름을 검색하니 옮겼다는 부서에서 일을 잘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동료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기도 했고, 육아 휴직에 들어가기도 했다. 언젠가 그가 아이를 연속 셋이나 낳아 복직하지 않는 동료에게 피해를 받는 것처럼 말했는데, 그 생각에 여전히 이견이 없을까, 문득 궁금했다.
파도타기를 통해 경기도의 한 도시에서 상담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발견했다. 공공기관에 소속되어 상담할 수 있는 점이 고용 안정을 보장해 줄 것 같아 매력적이었다. 자세히 읽어 보니 다음 달에 취득할 자격증이 당장 필요했다. 연수를 더 빨리 들을 걸. 하지만 지금 듣는 연수의 이러닝 교육도 미루고 미루다가 마감 날까지 안고 있는 지경이다. 오늘 아침엔 아직 이러닝을 다 듣지 않은 사람에게만 가는 것이라며, 마감일 지키라는 협박성 문자도 받았다. '지원'을 눌러 대충 신상을 입력하고, 어떤 질문들에 답해야 하는지 훑어보았다.
마지막으로는 어느 대기업의 공고를 보았다. 맞춤법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원'을 눌렀다. 역시 마감일과 질문들을 확인했고, 학력까지만 입력했다. 고등학교에 2018년에 입학했다고 써놓고 화면이 다음으로 안 넘어간다고 성질을 부렸다. 2008년은 너무나도 멀고 낯설어서 나도 모르게 2018년으로 바꾸었더랬다.
신나서 내년 계획을 말했는데, "경찰 박봉인 것 아냐"는 소리를 제일 먼저 들었다. 나랑 별로 상관없어서 상처 받는 위치도 못 되었다. 술을 마셨고, 모든 이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 같았고, 자기 나름대로 조언이랍시고 한 말이었고, ...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차고 넘쳤다. 내가 다니는 회사 이름을 말한 적도 없는데, 어디에서 듣고 잡플래닛에서 연봉 정보라도 찾아낸 낌새였다. 그런 오지랖은 아주 인간적이면서 그만큼 비인간적이기도 했다. 그 간극은 아득했고 당황스러웠다. 생에 대한 모든 가정이 달랐다. 그 사람은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본인의 신념에 따라 정확하게 행동했다면, 자기가 옳은 만큼 상대가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다음엔 뭐가 있는지 나는 계속 물었다. 그 사람도 이유 모르게 기분 나빴을 것이다. 난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지옥불에 뛰어든 게 안쓰러우면서 우스웠다. 하지만 내게는 생각만 해도 힘든 그 자체가 그에게는 견딜 만하다면? 과정 자체를 즐긴다면? 분명히 좋아하는 걸 하는 눈빛이었거든. 그럼 잘 타고나서 좋겠다,고 꼬리를 내려야 하나.
집에 와서 여태 본 책과 영화의 기록들을 찾았고, 그것들을 함께 나눈 사람들의 이름도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다. 하지만 그 끝은 채용 공고였다. 그렇다고 그가 맞다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내가 더 맞겠지만, 나도 아주 맞는 것은 아니니까 살짝 여지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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