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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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왕/여정

9월 다섯째 주(9/26~10/2)

도르_도르 2022. 10. 1. 01:08

9/26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_김영민

진상이 무엇이든 정체성이 부재한 대상에게 원칙에 입각한 비판을 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연체동물에게 뼈를 때리는 비판을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9/27

『밝은 밤』_최은영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9/28

『내게 무해한 사람』_최은영

「그 여름」

이경은 수이처럼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울면서 매달리고, 이렇게 쉽게 끝을 정하지 말라고, 한 번만 더 생각해보라고 빌었다. 이경은 자기가 이렇게 비굴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놀랐지만, 매일매일 이렇게 살더라도 은지와 함께하고 싶었다. 내가 이런 인간이었나 자문했지만 과거의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었다.


9/29

『달과 6펜스』_서머싯 몸

아, 정말. 못 말리는 사랑무새여. 표시해 놓은 게 죄다 이런 구절이다. 사랑은 어쩌고, 어쩌고는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어쩌고…. 지금이야 말로 인생에서 가장 사랑을 덜 외치는 때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너무 잘 쓰지 않았는가. 아직도 심각하게 마음을 후벼 판다. 특히 '사랑은 사람을 실제보다 약간 더 훌륭한 존재로, 동시에 약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이 부분은, 서머싯 몸의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닌데, 취향을 잊게 만든다.

 

사랑은 몰입하게 한다.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를 잊어버린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머리로는 알지 모르나―자기의 사랑이 끝날 것임을 깨닫지 못한다. 환상임을 알지만 사랑은 환상에 구체성을 부여해 준다. 사랑하는 이는 사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알면서도 사랑을 현실보다 더 사랑한다. 사랑은 사람을 실제보다 약간 더 훌륭한 존재로, 동시에 약간 열등한 존재로 만들어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이미 자기가 아니다. 더 이상 한 개인이 아니고 하나의 사물, 말하자면 자기 자아에게는 낯선, 어떤 목적의 도구가 되고 만다.


9/30

『사랑의 이해』_이혁진

모두를 논란에 빠뜨렸던 사랑의 이해를 들고 왔다! 땀을 뻘뻘 흘린 면접을 마친 직후이다.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거짓말 좀 보태면 꿈꿔온 '이상적인 면접 상황'을 옮긴 것 같았다. 학력이 블라인드가 아니라서 그런지 상담 이론이나 MMPI 척도에 대한 질문은 받지 않았다. 학사+석사+임상2급+청상3급+청상2급인데 그런 질문을 두려워하는 나도 나이지만(모지리), 그런 질문을 하는 기관에게도 너무 아쉬웠었다. 고위기 내담자 만났을 때의 매뉴얼(예전에 받았던 질문)과 이 지역만의 특징(블로그에서 확인한 기출 문제)도 샅샅이 찾아갔는데, 찾으면서도 이걸 묻는 건 가오 아닌가,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더랬다. 그런데 직무와 관련 없는 질문은 하나도 없었고, 여태까지의 경험, 특히 청소년 내담자를 만났던 경험에 대해 상세하게 물어봐 주셨다(이게 제일 중요하니까!). 또한 상담 외 직무 관련해서도 안내해 주시고 그에 맞는 역량이 있는지 물어보셨는데, 그 모두가 이러한 직무를 수행할 직원을 뽑는 합당한 과정이라고 이해되어서 마음이 편안하고 크게 긴장되지도 않았다. 어제 거의 한숨도 못 잤다. 날이 밝았을 때 이대로 자면 아예 면접에 못 갈까 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씻고 옷 입고 구직자 흉내를 내어 겨우 면접장에 도착했는데, 안 갔으면 어쩔 뻔했을까. 이 정도면 결과가 나쁘더라도, 정말 좋은 경험이다. 어느덧 일기맨이 되었네.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충족감, 확보감. 그 후로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선명했다. 자그마한 흠집조차 나지 않은 것 같았다. 보호 필름을 벗기면 아직 새것인 양 반들거리는 핸드폰의 액정처럼. 가식이든 위선이든 한 꺼풀 덮어 어떻게든 생활이 긁고 찍고 문지르며 만드는 흠집을 견뎌 내야 했다. 하지만 정말 그래야 할까? 왜, 언제까지?


10/1

『젊은 느티나무』_강신재

외장하드에서 뭘 찾다가 '젊은 느티나무'라는 워드 파일을 열었다. 단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편지를 거기 둔 건 나 읽으라는 친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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