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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_김금희, 은희경, 권여선, 정한아, 최은미, 기준영 본문
210609 mercredi
『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_김금희, 은희경, 권여선, 정한아, 최은미, 기준영
기쁜 마음으로 노트북을 켰다. 티스토리에서는 무려 첫 번째 독서 리뷰 포스팅이다! 울며 웃으며, 좋은 부분에는 형광펜도 칠하고 어플(몇 달 전부터 '북모리'를 사용하고 있다)에도 옮겨 적다가, 어느덧 대장정의 막이 내려 책을 덮으니 잊었던 피로가 몰려왔지만 그래도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은 건 아름다운 작품들에 대한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책은 이북으로 읽었다. PC로, 태블릿 PC로, 스마트폰 등 수단을 가리지 않고 볼 수 있어서 편리했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수상자들이 전부 여성이라는 점이다. 작년에 수상작 하나 때문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문학동네 주관 젊은작가상. 올해 출간된 『2021 제1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또한 수상자들이 전부 여성인 데다가 페미니즘이랑 퀴어가 왜 이렇게 많냐는 요지로 별점 테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놓고 읽지는 못하여 그 책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긴 힘들지만, 나는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책은 yes24에서 전부 해결하는데, 평점 기록이 주요 서비스가 아닌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마저 그런 리뷰가 심심찮게 보였다. 하지만 김승옥문학상은 젊은작가상보다 상대적으로 화제성이 떨어져서인지 같은 사이트에서 『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보고 여성 작가가 쓴 여성의 이야기라 남자가 읽기에 공감이 안 된다고 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여성 작가들이 썼으니 아무래도 여성의 서사가 주축인 건 맞다. 나는 여성이 주인공인 작품을 좋아한다. 별것도 아닌 일로 피 터지게 싸우고, 다른 성의 사람이나 약자들에게 으스대는 누아르 같은 장르는 취향이 아니다. 싸움이라고는 없는 인생에서 남의 패싸움이 뭐 그리 재미있겠나?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SNS에서 보는 저 친구는 정말로 항상 행복한지, 왜 사랑에 실패해도 인생은 계속되는지, 친구나 엄마와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읽을 때도, 읽지 않을 때도 생각하기 때문에 이 작품집은 매우 내 취향이었고, 몹시도 재미있었다. 관계를 질문하는 작품은 편협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확장되면 확장됐지.
김승옥 작가도 알고, 김승옥문학상이 권위 있는 상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실제로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은 것은 처음이었다. 조금 소개를 하자면, 김승옥문학상은 당연히 『서울, 1964년 겨울』을 쓴 바로 그 작가, 김승옥을 기리는 문학상으로, 2013년 KBS순천방송국에서 제정하였으며, 2019년부터는 순천시의 지원으로 문학동네가 주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문학동네가 두 번째로 주관한 김승옥문학상 작품집을 본 셈이다.
작품도 작품이거니와 작품마다 달린 평론에도 진귀한 글귀들이 많았다. 어릴 적에는 평론을 읽을 땐 어렵기도 하거니와 내가 작품을 보면서 느꼈던 것들이 부정당하는 느낌이라서 작품이 끝나고 평론이 시작되는 첫 페이지를 펴면 기분이 별로였다. 하지만 이제 머리가 큰 건지, 평론들이 친절해진 건지, 작품과 평론이 이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작품을 다 읽고 평론이 시작될 때도 새롭게 반가웠다. 평론은 김화영, 류보선, 백지은, 윤대녕, 윤성희, 하성란 심사위원들이 하나씩 썼고, 맨 마지막에는 총평도 등장한다.
1.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_김금희
표제작이자 대상을 받은 작품. 화자인 채은경과 기오성, 채은경의 사촌, 강선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채은경이 엄마의 사십구제를 마치고 기오성에 대해 인터뷰해달라는 이메일을 받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팍팍하고 어두웠다. 잠깐 숨통 트이는 구간이 있었는데 결국 끝까지 터널을 통과 못한 갑갑한 느낌. 심사평을 읽을 때 김화영 심사위원은 구조가 좋다고 설명했지만 소설에 획기적인 무언가가 없는 것 같아서 조금 의아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이 책을 읽었는데도 표제작만큼은 생생하게 기억난다. 풋풋한 감정과 아름다운 배경, 엇갈린 사랑, 삶의 척박함, 세월의 흐름,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화한 인물들이 잘 버무려져 매력적인 소설을 만든 것 같다.
7%
그 얘기를 들으며 나는 내가 사게 될 중고차와, 그가 간다는 바그다드를 번갈아 떠올렸다. 노교수에게서 받을 돈으로 우리가 이루게 될 미래의 어느 날들에 대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 둘은 공통점이 없게 느껴졌고 결국 시간이 지나도 함께 묶일 수 없을 듯했다. 하지만 그 뒤에도 우리가 모란시장을 걷는 시간은 조금씩 길어졌고 나는 푸성귀며 고기며 생선과 화초가 뒤섞여 있는 시장 어딘가에서 자주 웃었고 사랑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 마지막 문장이 제법 좋다.
10%
나는 저 몸에 무엇이 찾아들면 강선이 되나, 하고 생각했다. 창호를 바른 문으로 어느 순간 들어선 빛에 아침이 시작되듯, 찬 공기에 콧속이 열리고 창공이 높아지면 불현듯 여름이 종료되듯 사람에게도 그가 사람이게 하는 시작점이 있을까.
13%
혹시 그건 그렇게 해봤자 손에 쥘 게 없다는 가난한 체념이었을까.
15%
때론 너무 중요해서 당장은 보낼 수 없는 응답도 있는 법이니까.
2.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_은희경
가슴을 파고드는 은희경 작가의 문장들. 삶에서 어쩌다 알게 되었지만 어떤 과정으로 알았는지는 알 수 없는 영역들을 펼쳐내는 데에 능한 은희경 작가는 민영과 승아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소설에 나오는 SNS를 작가가 중요한 장치로 잘 다루는 걸 보면 아주 세련되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랬다. 다 읽은 소감으로 해시태그를 남기겠다. #사랑 #우정 #뉴요커 #인종차별 #소외감 #외로움 #여행 #단절 #화해 #썸인지_아닌지_헷갈리는_관계
21%
그녀의 눈에는 이 거리의 모든 것이 낡고 칙칙하고 구닥다리이고 영세했다.
23%
그녀는 무책임한 낙관과 자기 연민에 빠진 비관 둘 다를 경계해왔다.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하면서 주어진 조건에 순응해왔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언제까지나 그런 사람만은 아니란 걸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24%
뭔가 내키지 않거나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의 습관대로 승아는 눈앞에 있는 사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25%
그의 표정은 더이상 학회 세미나에서 알게 돼 이따금 안부를 전하는 동료의 것만은 아니었다.
>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니 감탄만 나온다.
29%
그런데 무언가가 있다고 강조하는 건 원하는 다른 것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이기 십상이다.
33%
서로가 알면서도 연기를 하고 그 연기에 진심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것. 그런 기만이 필요할 만큼 둘 다 약해져 있었다.
33%
일생을 두고 모두를 준 존재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더 이상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큼 그녀를 무력하게 만드는 건 없었을 것이다.
34%
승아의 성실함에는 어떤 종류의 충성도 같은 게 포함돼 있었고 사실 자신이 뭘 원하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게 더 근접한 이유였을 것이다.
35%
친하다고 해서 비슷해질 필요는 없었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미소를 보내고 손을 흔들면 되었다. 민영은 그것을 납득시키면서 유지해야 하는 관계들이 피곤했고 적당한 기만으로 덮어두지 못하는 자신 역시 지겨웠다.
<작가노트>
37%
“절대로 의심할 줄 모르는 생각 없는 사람들을/ 절대로 행동할 줄 모르는 생각 깊은 사람들이 만난다,/ 이 생각 깊은 사람들은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단을 피하기 위해서 의심한다.”
> 브레히트의 시구를 인용한 것. 행동하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과 의심을 내려놓는 지점이 필요하다. 생각을 하느라 비겁했을 때가 얼마나 많았나.
37%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슬픔이 흔해져서, 슬프지 않은 소설을 쓰려고 하는 마음이 오히려 새로운 결기가 되었다.
(...)
나는 단지 내가 길을 찾아 가까스로 진입해들어간 이 이야기의 세계가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까.
단순하게 쓰려면 더욱 정확해야 한다는 깨달음이 오고, 그러나 그 깨달음은 다음 소설을 쓸 때 아무 소용도 없어지리라는 것. 그러니 또 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고마운 일이라고 또 생각했다.
39%
“나는 오랫동안 소설이란 유의미한 현실을 재현하고, 또 그 과정을 도움닫기 삼아 순간이나마 위로 날아서 현실을 다시 한번 조망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에 착지하는 지점이 글쓴 자의 시야가 된다고. 요즘 그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재현, 그러니까 보여주는 데에서부터 이미 쓰는 자의 조망이 시작되는 게 아닐까”
3. 「실버들 천만사」_권여선
모녀의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평범하게 보였다. 읽어갈수록 독자는 하나씩 정보를 얻으면서 종래에는 다른 각도로 모녀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엄마의 선택과 상황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약간은 뻔한 서사라 생각했는데, 풀어내는 방식이 색다르고 깔끔했다.
4. 「바다와 캥거루와 낙원의 밤」_정한아
대학생 때 재미있게 읽은 『달의 바다』를 쓴 정한아 작가를 다시 만나 기뻤다. 제목은 우화 같으나 내용은 처연했다. 최근에 현실에서 시원 님을 알게 되었는데, 주인공 딸로 시원이 등장하고, 그 이름을 주인공이 지었다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두 번의 결혼 생활을 끝내고 열다섯 살 난 자식과 본가로 들어가는 일, 첫 번째로 결혼했던 식장이 요양원으로 리모델링되는 것을 보는 일, 박사까지 했는데 열악한 환경에서 강의하다가 그마저도 내쫓기는 일, 원치 않는 아이를 가지는 일만큼이나 두려워하던 것이 이런 종류의 일이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공포 소설처럼 느껴졌다. 재미와 무서움을 같이 느끼면서 줄줄 읽어내려가는 소설. 전작에서도 느낀 작은 반전을 이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57%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그가 주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돌려주고 싶지도 않았다.
69%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고 온다는 말에 관계의 추가 기울었다. 그것은 불온한 것이었지만 순식간에 내 몸을 덥혔다.
61%
나는 마음을 작은 공처럼 만들어 윤에게 주었다 뺏기를 반복했다. 전부 무의미한 일이었다.
5. 「내게 내가 나일 그때」_최은미
옛 연인이나 옛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는 서사를 좋아한다. 초입에는 동네 오빠를 오랜만에 만나는, 마냥 밝은 이야기로만 느껴져서 밍밍했다. 하지만 역시 그런 작품이 아니었고, 그냥 그런 작품이 아닌 게 아니라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매우 심각했다. 나도 유정과 같은 상황을 오래도록 상상했던 것 같다. 유정 같은 사람을 상담하는 상상도 많이 했다.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심정을 잘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놀랐다. 안 그래도 내가 나이기 어려운 세상인데 너무 안타까웠다.
75%
유정은 이전을 생각했다. 그 산문을 쓰기 이전. 친족 성폭력 얘기를 쓴 유정의 소설이 유정의 자전적 경험을 모티프로 한 것임을 밝히기 이전. 재상이 삼촌이 전화를 하면 받고 들렀다 가라고 하면 들르던 이전.
유정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가족들이 그 글을 읽은 것인지, 읽었다면 누가 읽고 누가 못 읽은 것인지, 그들이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글로 써서 발표까지 해놓고 왜 자신은 가족들한테 정식으로 얘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직접 말은 못 하지만 이렇게 썼으니 알아서 알아채 주길 바라는 것인지, 계속 모르길 바라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79%
유정은 자신이 무언가를 잘못하지 않았다는 건 납득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잘못된 존재가 아니라는 건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죄책감은 가까스로 넘어설 수 있어도 수치심은 여전히 거대한 벽이었다.
80%
유정도 알고 있었다. 유정이 그 말을 한다고 해서 가족들이 유정을 안 보진 않을 거라는 걸. 유정이 두려운 것은 유정 자신이 가족들을 안 보게 되는 것이었다. 유정이 두려운 것은, 무언가를 체념한 채로 계속 가족들을 보면서 그런 자기 자신을 다시 혐오하게 되는 것이었다. 유정이 원하는 것은 어떤 분열도 겪지 않고 제정신으로 가족들을 보는 것이었다.
81%
몸안의 모든 수분, 모든 피를 빼내고, 모든 습기를 말리고, 비틀고, 보이지 않는 입자로 갈고 갈아서, 완전히 부수어서, 이 세상에서 완벽하게 없애버리는 것. 몸을 없애는 것. 이 지긋지긋한 몸을 없애는 것. 이해받지 못하는 몸을 없애는 것. 유정이 오랫동안 원해온 것은 그것이었다.
> 모두가 몸을 못 보게 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해설>
84%
쓰기는 아는 것을 옮겨 적는 행위가 아니라 어떤 것을 씀으로써 알게 됨을 겪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
85%
‘내게 내가 나일 그때’는 삶의 매 순간이어야 하지만, 쓰지 않는 순간에도 살아 있는 우리는 쓴 것이 자기를 적중하는 그때에야 실은 “자신이 아끼던 어떤 것도 자신을 붙잡아주지 못할 거라는 걸” 아프게 자각할 터인데 그럼에도 쓰기를 포기할 수 없는 이에게 ‘내게 내가 나일 그때’의 좌표는 계속해서 새로 맞이해야 할 미지의 자리이리라는 사실 말이다.
86%
내가 쓴 것이 오히려 나에 대한 부정확한 말들을 부추기고 다시 그 말들이 나를 가두는 딜레마 속에서도, 쓴 것의 구속은 오해에 갇히는 구속이 아니라 오해라는 구속에 저항하는 구속임을, 작가들은 궁극적으로 지속적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6. 「들소」_기준영
기준영 작가의 작품은 처음이다. 많이 울었다. 해설에 나오는 것처럼 주인 집 할머니의 실종된 딸과 닮은 엄마, 할머니와 나의 교감, 길우에 대한 나의 감정이 겹쳐지는 모습들이 오묘하면서 슬펐다. 슬프거나 아픈 사람들이 많이 등장해서 그런가. 결말과 제목을 차지하지만 등장하지 않는 들소에 대한 논란이 있을 것 같다. 나에게 들소는 희망적인 존재로 느껴졌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90%
내가 하고 싶은 다른 말이 훨씬 더 중요했다. 길우가 내게 아름답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아름다움은 귀했다. 나는 기꺼이 현혹됐다. 그 사실을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라는 제목의 설문 조사 용지를 나눠주며 오십여 가지 보기 중에서 하나를 골라 표기하라고 한다면 무의식적으로 가장 먼저 그 단어를 발견하게 될 사람이 나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요?’ 하고 누군가 묻는다면 설명하기가 무척 힘들어질 것이었다.
91%
그건 너무 많이 보여주는 일이 될 것이었고, 동시에 겨우 그런 것들로만 보이게 되는 일이었다.
92%
이토록 애틋한 내 마음이 한순간에 볼품없이 사소하고 너절한 이유로 완전히, 그야말로 바람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고 여겼고, 그 때문에 이미 슬펐다.
94%
소중한 걸 잃는 기분에 대해서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여겼는데,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모르는 채로 더 잃게 될 것이다, 뼈가 시려올 때까지.
(...)
어느 한때 우리는 마흔세 살쯤이고, 하루가 저무는 속도로 하루를 잃는 보통의 어른이다. 아이일 때보다 훨씬 많은 비밀을 품고 살지만, 비슷한 스타일의 외투 서너 벌 속에 스스로를 단정히 채워넣는 사람이다.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귀중하다는 표현과 나란히 붙여놓고 볼 수는 있으나 타인에게 쉽게 발설하지 않는 사람. 다만 우스워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진땀을 흘릴 만큼 힘을 들여야 하는 사람.
<해설>
95%
그리고 좋은데 뭐가 좋은지 정확히 말할 능력이 모자라 그저 어리둥절해하며 오랫동안 가만히 있었다. 아, 좋은 작품은 그냥 좋구나, 어떻게 좋은지 말로 설명할 수 없어도 좋구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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