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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210601 mardi 본문
쓰다만 일기가 도대체 몇 개인지. 하고 싶었던 말을 끝내지 못한 건 아쉽지만, 새로운 달(月)이 밝았으니 새로운 글로 넘어간다. 여러모로 오지 않았으면 하면서도 기대했던 6월. 여행이 끝났으며, 아등바등 준비했던 시험의 결과가 곧 나오고, 본격적으로 이사할 집을 찾아야 하는 때이다.
제주에서 찬과 하루에 한 번씩 크게 다퉜다. 여행 가기 전부터 한두 번 삐걱댄 게 아니어서 사이가 나쁜 때에 괜히 여행 일정을 잡은 것인지, 아니면 여행이라는 커다란 사건 때문에 긴장과 불안이 고조된 것인지 가늠이 안 되었다. 이유야 어떻든 둘 다 반갑지 않은 일이었고, 종종 이번 여행을 총망라하여 계획한 이가 바로 나라는 사실이 후회되었다. 나는 차분해 보이지만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고, 절대 돌아가지 않을 옛 연인의 꿈을 꿨다. 찬은 한 번씩 언성을 높이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태평했다. 갈등을 겪을 때 우리는 그걸 느끼고 표현하고 해소하는 방식이 전부 달랐다. 그는 회피하는 나의 방식을 지적했는데, 힘들게 직면하여 내뱉어도 그 말이 그에게 닿아서 무언가를 바꾸기까지는 서너 번의 시도가 더 필요했다. 그는 내가 말하는 동안에는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느라 바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제가 발생하면 그가 화를 내고 내가 힘겹게 의사를 정리해서 말하면 그는 입을 다물고 사과하는 패턴이었고, 하지만 반복되었고, 패턴이 보이자 지겨워졌다. 분명히 긍정적으로 바뀐 부분도 있었다. 그렇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서는 미약했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자체가 점점 이런 비효율적인 걸 왜 하냐는 의문에 도달했다.
제주에서 두 번째 낮을 맞았을 때 그가 또 사과했다. 나는 이제 못 믿겠다고 말했다. 다음에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거야. 어떻게 바뀔 수 있어? 그냥이란 건 없어. 무슨 노력을 해서 어떻게 바뀔 건데? 그는 자신이 한 번 더 그런 행동을 하면 내게 떠나라고 말했다. 내가 떠나도 할 말 없다고. 또한 그런 장치가 스스로 엄격하게 자기 행동을 다스리도록 만들 거라고도 했다. 도움을 구했다. 자신이 또 그렇게 할라치면 신호를 달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단칼에 거절했다. 네 마음은 네가 알아차리고 관리하는 거지, 내가 왜? 나를 할퀴고 울리는 그게 뭐 예쁘다고 내가 도와줘? 그리고 나는 언제나 너를 떠날 수 있어, 네가 할 말이 남았든 안 남았든. 너도 마찬가지이고.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연인으로 둔 찬의 행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나의 연인이 언제나 나로 인해 행복하길 바라는 나 또한 행복하지 않았다.
서울로 돌아와서도 그와 부딪혔다. 그를 참을 수 없었고, 그와 가까이 지내는 나 자신이 싫었다. 그의 집에 있던 내 물건들을 전부 쌌다. 책, 옷, 신발, 화장품 등 한 짐이었다. 택시 기사님이 이사 가는 거냐고 물어보셨다. 본인 짐도 벅찬데 남의 짐까지 이삿짐 수준으로 쌓여 있어서 그도 답답했겠지. 짐을 풀고 정리하는 중에 그가 찾아왔다. 나는 너의 좋은 점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게 이제 좋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잘 맞지 않아.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둘 모두에게 좋은 일일 수 있어. 적당한 거리를 찾아야 할 것 같은데, 거리를 두면서 문제 푸는 방법을 잘 모르겠어. 멀어지는 건 돌아서는 건데. 몰라, 소용없는 일에 더 이상 애쓰기 싫어. 헤어지고 싶냐고 그가 물었다. 난 이렇게 싸울 때마다 헤어지는 생각을 하는 걸. 오늘도, 어제도, 그 전날도 했어. 그는 이상한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다. 자신은 한 번도 나랑 헤어지려고 생각한 적 없다고,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충격적이라고 했다. 소중하고 아끼고 좋아한다면서 왜 그렇게 대하지는 않는지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내가 아무리 휘둘러도 조금도 꿈쩍 않고 자리를 지키는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가 나랑 매일 얼굴을 보면서도 출근길에 내 사진을 보면서 미소 짓고,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혼자 다 먹어 치울까봐 내 그릇에 덜어 주고, 자식을 대하듯 귀여워하고, 무엇도 나와 나누길 주저하지 않는 것을 안다. 그가 어떠한 인생을 살아온 어떤 사람이든 이 순간만큼은 나를 아주 많이 본다는 걸. 나 또한 그의 마음이 고맙고 신경 쓰이는 걸 보면 아직 헤어질 때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더 머물러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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