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가까운 사람들과 만났다. 5인 이상 집합 금지이기도 하고, 애초에 관계도 넓지 않아 모인 사람의 수는 셋. 은희경은 3이 좋은 숫자라고 했다. 세 명이 모이면 늘 그 구절을 떠올린다, 3은 정말 좋은 숫자야. 최근에 찬과 더할 나위 없는 관계에 도래한 나는 만족에 휩싸인 채 약속 장소에 나갔다.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가 정말 잘생겨 보인다. 예전에 몰랐던 게 이상하다. 사람들이 칭찬해도 내 눈엔 그렇게 안 보여서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었거든요. 정말 연예인 같다니까요? SNS에 자기 아이 사진 많이 올리는 이유가 너무 예뻐서래요. 찬에게 그런 기분을 느껴요. 너무 사랑스러워서 여기저기에 다 올리고 싶어요. 그가 제일 멋있을 때는 씻고 문 열었을 때인데, 씩 웃으며 "귀여운 도르링"이라고 하면서 젖어서 딱 붙은 머리칼을 수건으로 털면 머리통이 쪼그마해가지고... 놀림을 당했다. 얘 처음에 어땠는지 아세요? 누가 봐도 서로 잘되고 있는데 그렇게 아니라고 아니라고 발뺌하더니 한밤중에 자꾸 만나러...
맥주를 몇 병 비우고 그의 집으로 갔다. 그는 아직 오지 않았다. 비를 제법 맞았지만 기분은 뽀송했다. 문득 찬과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인지 머리를 굴렸다. 예전에 내가 그렇게 언행 불일치가 심했나? 그와 처음 만난 날에는 기본적인 맨몸 운동을 배웠다. 그 다음 날은 인바디를 쟀다. 아, 바로 그날이었다, 연애 감정의 싹이 잘린 게. 아무리 운동을 배우려고 갔다지만 잘 모르는 누군가의 가까이에서 몸을 움직이는 자체가 뻘쭘했던 나는 다리를 벌리는 스트레칭조차 '이건 단지 운동일 뿐'이라는 주문을 외워야 했는데, 나를 관찰하는 이는 심지어 젊고 건장한 남성이었다. '이 사람은 나를 도와주려는 전문가'라는 생각으로 무장했으니까 그 곁에서 인바디 기계를 양손으로 붙잡고 반갑지 않은 몸무게와 체지방 수치에 대해 귀 기울일 수 있었지, 아니었으면 진작 뛰쳐나갔을 것이다. 그는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게 된 나에게 자신이 귀찮을까봐 걱정하지 말고 자신을 ‘이용’하라고 당부했다. 수강생을 위해서라면 이용당해도 족하다는 그의 말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에게 자주 연락했고, 만나자고 하면 나가기도 했다. 그는 야심한 밤에 나를 불러놓고서 농담을 하다가도 내 몸무게를 물어봤다("누나 몇 킬로였지?"). 어쩔 때는 공원에서 운동도 시켰다(실화임). 아주 늦은 시간에도 나를 집 앞에 데려다주는 매너따윈 없었으며, 오히려 하품을 찍찍하면서 자신의 피로를 드러낸 뒤 사거리 같은 데에서 이만 자러 들어가야겠다고 돌아섰다. 그에게서 어떤 칭찬의 말도 듣지 못했다. 칭찬은커녕 잘 웃고 남 신경 안 쓰는 나의 특징을 이상하고 낯설게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나를 소중하거나 예쁘거나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하긴 애초에 몸무게부터 알려주고 시작된 관계에서 무슨 로맨스가 일어날 수 있을까? 덧붙여 그는 성공적인 체중 관리 중이었으니 그에 관해 무지한 나를 한심하다고 여길지도 몰랐다. 헬스장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는 예쁜 옷이나 좋은 향기나 사근사근한 말씨가 무용지물이었고, 그와 나 사이엔 나의 자격지심뿐이었다. 그래서 그가 무언가를 챙겨줘도 애써 '시간이 남아도나 보다’로 치부했다.
사귀고 나서도 한참 후에야 내가 내 몸을 보듯이 그가 내 몸을 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는 내 몸에 전혀 관심이 없다. 자기 몸을 신경 쓰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어야 하고, 단백질도 보충해야 하고, 운동 가야 하고, 씻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해서 정말 바쁘다. 그가 바쁘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유를 만끽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낯설게 섭섭했다. 자유로움과 섭섭함 사이에서 다투고 화해하기를 반복하다가 우리는 이전보다 단단해졌다. 단단해진 건 좋지.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연인을 높이는 건 여전히 울렁거리는 일이어서 9시간 동안 일터에 있다가 왕복 3시간이 넘는 출퇴근길을 오가며 귀가한 그에게 나도 모르게 시비를 걸었다. 상대에게는 나만큼 관심 가는 주제도 아닌데 내 연인이 얼마나 근사한지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한 거지. 마음이 진정되자 다음부터는 말하기 전에 더 많이 생각해야겠다고 다짐했고, 찬에게도 진상을 밝히며 사과했다. 이제 그는 투정과 투정 아닌 것을 구분할 줄 알아서 별 타격은 없지만.
사람들 앞에서 연인을 자랑하기 힘든 건 불안 때문이다. 관계란 모름지기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되기 마련이고, 그걸 잘 견디고 조율할 줄 알아야 하는데, 관계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는 건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그 좋은 점의 속성을 더해주는 것만 같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어떻게 해결할지 주위 사람들과 함께 궁리하는 그 시간들이 의미도 있고 좋아지리라는 희망도 생기지만, 자랑은 혼자 갖고 있을 땐 너무 좋아서 옴짝달싹 못 할 지경이나 뱉는 순간 공허해진다. 그의 귀여움은 결국 타인과 나눌 수 없다. SNS에 아기 사진을 잔뜩 올리는 것이 아기를 영원히 키울 생각 없는 사람에게도 무해한 건 가정을 꾸리고 아기를 낳고 기르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에게 발생하더라도 좋을, 일반화가 쉬운 일. 내가 만약 찬과 혼인관계였다면 그에 대해 묻는 상무님에게도 말할 수 있겠지(그래도 싫음). 나와 찬이 동성애자였다면 연인을 자랑하고 싶을 때 믿을 만한 지인을 신중하게 찾아야 했을 것이다. 사회적 바람직성을 제거하는 건 오랜 소망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렵다는 걸 느낀다. 그렇다고 해서 결혼을 관계의 불안을 잠재울, 서로 참고 함께하게 만드는 역할로 이용하기는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