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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노매드랜드, 2020> 본문
210708 jeudi
<니키리라고도 알려진>을 보러 아트나인에 함께했던 이가 말했다. "<노매드랜드>가 하네?" T와 BM은 벌써 봤단다. 영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은 우리가 아는 자연이 아니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그리고 아주 좋은 영화라고 평했다. 나도 그 영화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수상한 것을 알았고, 끌리는 구석이 있어 원작 소설 『노마드랜드』를 구입한 터였다. T와 BM의 취향은 믿을 만했다. 나는 바조에게 물밑 작업을 시작했고, 그는 지인에게 '네가 좋아할 것 같다'라고 진작에 추천받았다며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운 좋게도 퇴근 후에 영화를 볼 수 있는 시간대가 그 주에 딱 하나 남아 있었다.
정보를 모르고 보는 게 좋다는 T의 조언에 따라 준비한 건 없었다. 어울리는 단어들은 아니지만 '작품성 있는 자연' 정도의 생각을 했다. 제목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해 보지 못했는데, 떠돌아 다니는 펀(프란시스 맥도맨드)을 보며 'NOMAD(유목민)+LAND(땅)'의 합성어라는 것을 알았다. '유목민'은 현대와 동떨어진 단어 같지만, '파데 유목민'을 떠올리면 흔하게 쓰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Y가 '노마드족'이 자신의 이상향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때의 노마드도 이 영화의 노매드와 일맥상통한다.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현 사회에서 정착은 안정과 같은 의미이기도 하지만, 안주가 되기도 한다. 유목이란 불안정과 변화와 기회와 설렘을 내포한다.
영화는 주인공이 주위 사람들의 우려에도 차에서 생활하며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일하고,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펀은 여성이라는 느낌이 거의 들지 않았다. 여성이라는 성 역할이나 성 고정관념에 부합하지 않는 캐릭터였다. 그렇다고 남자처럼 느껴진 것도 아니다. 나는 펀이 한 명의 오롯한 인간으로 보였다. 일례로, 펀의 나신이 물에 둥둥 떠 있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성적으로 소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를 유혹하거나 누군가에게 아름답게 보이기 위하여 옷을 벗은 게 아니라 그저 인간과 자연이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른 모습이었다. 그의 내면은 고요하고, 행동에는 신념이 있었다. 그는 존엄했다.
스펙터클한 서사는 없지만 잔잔하다고 말하기에는 묵직한 영화였다. 점점 주인공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잊었고, 펀의 삶과 상념에 압도되어 내가 그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비티> 같은 영화에서 느꼈던 체험이었다. 펀은 사랑하던 남편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기거했던 동네를 잃었지만,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의미 있는 만남을 가지며,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스스로를 구원한다. 펀이 만난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뚜렷하게 안다. 적어도 헛된 것에 시간을 낭비하며 인생을 흘려보내지 않는다. 떠돌아다니는 자신의 삶을 기꺼워한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스완키(샬린 스완키)는 돌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는 펀에게 “내가 죽으면 친구들이 불가에 모여 돌멩이를 불에 던지며 날 기억해 줄까?”라고 말한다. 이후에 펀과 친구들이 정말로 불에 돌멩이를 던지며 스완키를 추모하는 걸 보며,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인생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는 삶. 누가 뭐래도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삶. 허울이 아닌 알맹이가 있는 삶. 사랑하는 누군가를 떠나보내더라도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을 갖는 삶.
나의 장례식장을 상상했다. 영화 <라빠르망>이 소리 없이 출력되고,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자가 조성진의 레퍼토리를 끊김 없이 재생하고, 조문객들은 밀란 쿤데라의 작품 중 멋진 구절을 나누는 장례식. 남은 인생 동안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던히 애쓰겠지만, 나의 장례식이 다른 모습이길 바라진 않을 것 같다.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 무엇에 실패하든, 나는 이미 완성된 사람인 것이다. 그 충족감이 기분 좋았다.
그대를 여름날에 비할까?
아니, 그대는 여름보다 더 사랑스럽고 부드러워라
거친 바람이 오월의 꽃봉오리를 흔들고
우리가 빌려온 여름날은 여름날은 짧기만 하네
어떤 날은 하늘의 눈이 너무 뜨겁게 이글대고
그 황금빛 가득한 그 얼굴이 흐려질 때도 많네
그러나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움 속에서 시들고
우연에 혹은 자연의 계획된 이치 때문이건 빛을 잃지만
그러나 그대의 여름은 시들지 않으리
그대는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으리
죽음도 그대가 제 그늘 속을 헤맨다고 자랑하지 못하리라
그대는 영원한 운율 속에 시간의 일부가 되리니
인간이 숨을 쉬고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이 시는 살아남아 그대에게 생명을 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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