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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연화
<니키리라고도 알려진, 2006> 본문
210705 lundi
서울살이의 이점 중 하나는 예술 영화를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사를 보고 7월 한 달 동안 아트나인에서 <니키리라고도 알려진>이 상영한다는 걸 알았다. 유퀴즈에서는 그가 배우 유태오의 부인인 것에 초점을 맞췄지만(물론 매우 열광했다), 짧게 나온 그의 작품 또한 눈길을 끌었다. <결혼 이야기>를 봤던 아트나인은 집과 꽤 가깝다. 게다가 오늘은 출근을 하지 않는 날이었고, 마침 시간이 되는 동행인도 구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준 문화 상품권까지 있네? 예매가 거침없이 이루어졌다.
https://star.mt.co.kr/stview.php?no=2021070409063583811
이 영화의 놀라운 점은 딱 1시간 분량이라는 것이다. 12시 50분에 영화관이 암전되었고, 다시 밝아졌을 때 시계는 정확히 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좀 더 찍으려면 찍을 수 있었을 것이다. 더욱 다양한 니키 리의 모습을 담았으면 작품이 더 풍성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핵심만 전달하려는 압축적인 분량이 좋았다.
니키 리는 한 사람이지만, 그가 보여주는 역할은 다양하다. 그게 이 작품이 혼란스러우면서도 매력적인 지점이었다. 친구는 니키 리의 전반적인 생애나 작품 세계에 관해 말해줬다면 작가와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나도 영화를 보기 전엔 친구와 비슷한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그렇게 풀어서 설명하는 건 작가가 추구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작가로서 '작품'을 보여주고 그걸 보는 관객에게 의문을 갖게 하는 것, 자아와 삶을 생각해 보게 하는 게 작가의 역할이라고 믿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게 맞다면 이 작품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사춘기 때 정체성을 많이 고민하지만 나이를 먹으면 자아가 안정되기도 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찾는 것보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더 시급해지기에, 자신의 역할, 가능성, 보이고 싶은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 등은 차츰 잊게 된다. 의외의 평가를 받았을 때나 관계에서 문제를 겪을 때 혹은 친밀한 사람들과 대화할 때만 종종 자신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본 건 니키, 니키 원, 니키 투가 무언갈 바쁘게 하는 모습들이었지만, 결국 관심의 종착지는 '나'와 '너'였다. 어느 게 진짜인지 모를 니키들 속에서(난 모두 진짜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지난한 고민을 통해 그걸 타인과 다른 세계로까지 확장시켜 진정한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졌다. 그런 연결점들이 카메라 앞에서 움직이는 니키를 예술로 만들었다. 사람들을 이었으니까! 그래서 니키가 별나고 자극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간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끊임없이 고뇌하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아, 책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주 많은 책 앞에서 니키 리는 읽는 것은 소통의 기본이며,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읽을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아트나인에는 이트나인이라고 해서 식당과 야외 테라스가 있다. 영화를 보고 시간이 나서 테라스에 앉듯이 누워 맥주를 홀짝이며 영화 이야기를 하니, 지난주까지는 꼬박꼬박 출근하던 직장인이었다는 정체성은 곧 잊혔다. '사람은 입체적이다'라는 명제를 넘지 못하면 이해, 배려, 존중 같은 건 낄 틈이 없어진다. 오늘의 나는 회사 따윈 잊고 빨간 원피스를 입고 또각또각 걸으며 볼일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었고, 그중 니키와 함께하는 시간이 있어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