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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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의 문을 활짝 열며

도르_도르 2020. 7. 10. 00:00

 

나는 아이일 때부터 표현력이 떨어졌다. 뭘 대놓고 제대로 말하지를 못했다. 그러한 기질을 타고난 걸 수도 있고, 숨겨야 하는 게 많은 환경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도 종종 답답함을 느꼈다. 하지만 심리학을 사부작사부작 공부했다고, 특정 행동이 반복되는 이유는 강화를 받아서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표현을 미루는 방법이었음을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한다.

 

성인이 되고는 인생에서 화려하고 재미난 일들이 제법 생겼다. 자연스레 공적인 모습과 사생활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음먹으면 번듯해 보이는 내가 고달픈 사생활을 이고 지고 책임지는 것도 힘든데 어디 떠벌릴 필요는 더욱 없었기에, 사적인 모든 것을 오롯이 독점하여 처리하고 싶었다. 그러니 내 표현력도 그다지 진전이 없었다.

 

인간관계는 늘 그랬듯 아주 좁고 깊었다. 그들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게 행복이었다. 그 사람들은 솔직하고 거리낌이 없었다. 마음에 안 드는 나의 어떤 점을 갖고 있지 않은, 그 대척점에 있는 것 같은 사람들과 지내면서 그렇지 못한 자신을 혐오하다가, 그 사람들을 닮아가는 기분에 뿌듯하다가, 아, 역시 나는 안 돼, 하고 다시 실망하고, 뭐,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그들과 보낸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세월이 가면서 조금 더 자신을 내보여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내 관점, 내 감정, 내 의견을 표현해도 괜찮다는 것. 누가 뭐라 하든, 언제 바뀌든 간에 이게 지금-여기에서의 내가 갖고 있는 것이며, 온 인류도 마찬가지로 개개인이 자신만의 고유성이 있고,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니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

 

 

그래서 이렇게 개방된 공간에 더욱 겸허한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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